흔히 전해지는 이야기와는 달리 황희는 청백리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8)
긍정의마음
쪽지전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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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07 15:29
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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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희를 말할 때 꼭 정승이란 수식어가 붙는 만큼 그는 조선을 대표하는 명재상으로 통합니다. 태종 시절에는 6조의 판서직을 모두 역임하기도 했지요. 지금으로 따지면 모든 행정부서의 장관직을 역임한 것. 벼슬살이한 기간이 73년, 영의정만 18년을 한 엘리트 중의 엘리트입니다. 그런 탓에 그의 인품을 칭송하는 이야기도 여럿 남아있지요.
하지만 흔히 전해지는 이야기와는 달리 황희는 청백리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습니다. 황희에 대한 미담은 대부분 조선 중기 이후에 창작된 것이지요. 기본적으로 정책을 논함에 있어서는 유능하고 대쪽 같은 성격이었는데, 정작 사적인 일에서는 사고를 많이 쳤습니다.
한 번은 황희의 사위인 서달이란 인물이 시골길을 지나다가 아전이 자신에게 인사를 하지 않자 건방지다고 종들을 시켜 두들겨 패는 일이 있었습니다. 동료 아전이 이에 항의하자 서달은 더욱 심하게 폭력을 가하지요. 그런데 그 아전이 해롱거리자 서달은 “몇 대 맞고 해롱거리다니, 대낮부터 술에 취한 모양이구나. 더 패서 버릇을 고쳐줘라!”라고 명합니다. 니가 패서 그렇잖아~ 결국 심하게 폭행당한 아전은 다음 날 죽어버리지요.
지방 관아에서 이 사건을 조사해보니 서달이 잘못한 것이 분명했습니다. 문제는 조사를 하던 중에 서달의 장인이 황희라는 게 밝혀진 것. 게다가 서달의 아버지는 당시 병조판서였습니다. 수령은 이거 그냥 법대로 처리하면 곤란해질 것 같은데란 고민에 빠집니다. 그래서 공식적으로 중앙에 보고를 올리기 전에 황희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요. 그리고 황희는 사위의 죄를 덮기 위한 대대적인 공작에 들어갑니다.
일단 황희는 사건이 난 고을 출신인 맹사성을 포섭합니다. 남 부탁 거절 못하는 사람 좋은 맹사성은 마지못해 황희의 청을 받아들이지요. 그리고 이후 과정은 상당히 심각합니다. 뇌물을 써서 친족을 회유하고, 돈으로 안 되면 협박도 하고, 더 안 된다 싶으면 동향인 맹사성을 내세워 ‘우리 고장 출신 정승이 부탁하는데 한 번만 좀 봐줘’라는 식으로 압박을 넣습니다. 심지어 왕에게 올라가는 상주문을 도중에서 가로채 조작까지 하지요.
사건 조작에 연루된 인원만 수십 명으로 서달은 장인어른 덕택에 앞으로도 떵떵거리면서 살 수 있나 싶었는데...... 문제는 그들의 상대가 세종이었다는 것입니다. 워낙에 일처리를 꼼꼼하게 하고 추리력 역시 뛰어났는지 상주문을 보자마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발견한거죠. 세종은 곧바로 의금부에 명해 사건의 진상을 밝히도록 합니다. 그리고 황희와 맹사성이 벌인 조작극이 만천하에 드러나지요.
결국 서달을 포함한 관련자들이 처벌받고 황희와 맹사성은 파면됩니다. 하지만 두 정승은 얼마 지나지 않아 복권되지요.
이 이야기는 <세종실록>에 기록되어 있는, 황희가 벌인 가장 악독한 짓입니다. 그 외에도 황희는 비리를 많이 저질렀습니다. 나라에서 시행한 개간 작업으로 생긴 땅을 불법적으로 차지하거나, 지방 수령에게 땅을 받는 대가로 그 아들에게 벼슬을 주는 등의 일도 있었지요. 그래서 그가 처음 영의정에 제수될 때 ‘매관매직을 일삼는 자를 영의정 자리에 앉힐 수 없습니다.’란 내용의 상소가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런 기록 중에는 과장 된 것도 있어서 황희가 박포라는 인물의 처와 간통을 했다는 기사가 실록에 실려 있기도 합니다. 말도 안 되는 뜬소문이라고 실록 제작 당시에도 문제가 되었으나 기록을 함부로 고칠 수 없다는 원칙 때문에 결국 실록에 그대로 실렸지요. 이 점에 있어서는 좀 억울할 만도 합니다.
여하튼 황희가 부패한 관료였음에도 불구하고 세종은 그를 중용했습니다. 사실 이건 세종 인사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개인적인 치부가 크더라도 능력이 출중하면 신경 쓰지 않고 요직에 앉혔지요. 지금 시대에서는 옹호하기 힘든 행위긴 합니다만... 여하튼 세종은 이렇게 사람을 썼고 결과적으로 황희는 세종 치세의 일익을 담당하며 명재상으로 이름을 날리게 됩니다.
실록을 보면 ‘황희의 의견을 따랐다’라는 구절이 수도 없이 나옵니다. 토론이 벌어지면 보통 그의 안이 가결되었음을 알 수 잇지요. 추진력과 안건 정리에 있어서는 당대의 누구보다도 뛰어난 모습을 보였습니다. 분명한 것은 세종에게 꼭 필요한 인물이었다는 것이고 능력면에서 볼 때 조선 전기를 대표하는 명재상으로 부족함이 없다는 것이겠습니다. 인성과 능력이 꼭 비례하지는 않는다는 적절한 예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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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사실이라면 이 세상에서 완벽한 인간은 없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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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에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이미지일 뿐 오히려 아주 악덕하고 파렴치한이죠
주의의 여성들과의 수많은 염문으로도 아주 유명한 일화도 많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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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른분 계시죠 민비(명성황후) 온갖 부정부패와 외척과 왕실의 권력 다툼만 벌이고
나라살림 다 들어먹고 실상은. 엄청난. 악녀인데
후대에와서 뮤지컬과 단지 일본놈들에게 시해당한 이유로. 엄청나게 미화 되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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