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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 스타 영어강사는 어떻게 ‘비트코인 재벌’ 됐나 (상편)

Views : 5,490 2020-01-09 15:44
비트코인 12745527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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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샤오라이(李笑ge·리소래)는 달변이었다. 논리정연하게 이어지는 그의 말은 쉬이 끊어지지 않았다. 중국의 대표적인 고래(대규모 투자자)로 알려진 그를 만난다고 하자 중국 블록체인 업계의 한 인사는 “언변이 좋으니 조심하라”는 조언을 했는데, 과연 그럴 만했다.



샤오라이(웃음이 오다)라는 이름은 왠지 말끝마다 깔깔 웃음이 터질 것만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그의 언어는 거칠었다. 인터뷰 초반에는 티를 내지 않았으나 대화가 익숙해진 뒤에는 중국어 욕설이 시나브로 따라붙었다. 다른 누군가에 대한 평가도 에두르는 법 없이 직설적이었다. 인터뷰를 하는 기자에게도 “그건 틀렸어”라고 다그쳤다. 그와 3시간 가까이 이야기를 하다보니 이른바 ‘녹음 게이트’(_U音뺠)로 불리는 사건이 왜 벌어졌는지 알 것 같았다. 아마도, 너무 솔직해서였을 것이다.



1972년생 중국 지린성 옌볜(연변)조선족자치구 출신인 그는 2018년 7월3일 본인 몰래 녹음된 파일이 인터넷에 공개되는 사건으로 타격을 입었다. 이 파일에서 리샤오라이는 업계 내 여러 인사들을 원색적인 언어로 품평해 논란이 됐다. 그는 이후 ‘녹음 게이트’ 사건 해명 차원에서 몇차례 언론 인터뷰에 나섰지만, 결과적으로는 대외 활동 자체가 부쩍 줄었다. 중국 내 블록체인·암호화폐 업계에 리샤오라이 소식을 물으면, “요즘은 조용히 지낸다”는 평가가 대부분이다. 그만큼 <코인데스크코리아>와의 인터뷰도 이례적이었다.



리샤오라이는 조선족이지만 그 스스로 “진지한 얘기나 일 얘기를 할 때에는 중국말이 익숙하다”고 말했다. 인터뷰 도중에 비록 우리말 몇 마디가 튀어나오기는 했어도, 결국 질문도 답변도 줄곧 중국어로 진행됐다. 그를 만난 것은 12월18일 오후 베이징 리두(N=都) 지역의 중국식 전통찻집이었다.





-그동안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궁금하다. 우선 우리말 실력이 어느 정도인가?





“실어(말을 잃음)라고 할까. 성장과정에서 생긴 일인데, 한족 학교를 다니게 되면서부터 조선어를 쓸 일이 없으니 못하게 됐다. 초등학교 3학년 이후부터는 조선어로 뭘 배운 적이 없다. 학습 능력이 생긴 뒤로는 중국어와 영어로만 학습을 했다. 그러니 집에 전화해서 어머니와 통화할 때 정도 빼고는 조선어를 쓸 일이 잘 없다. 연변의 조선족은 어차피 조선어와 중국어를 섞어서 쓴다. 그런 영향이 컸다.”





-창춘대에서 회계학을 전공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창춘대 회계학과를 1995년 졸업했다. 1996~1997년엔 한국 광주에서 약 10개월 동안 살면서 전남대 경제학과 대학원을 다녔다. 조선족 학생 대상 장학금을 받아 학비와 기숙사비를 댔고, 어린이들에게 아르바이트로 중국어를 가르치며 생활비를 벌었다. 중국 대학에서 배운 것과는 많이 달랐다. 폴 크루그먼이 쓴 책을 보며 거시경제학을 배웠다. 그러나 성적이 별로 좋지 않았다. 공부하는 방법도 잘 몰랐고, 재미가 없어서 관뒀다. 다만, 개인적으로 나중에 책을 쓸 때는 학생 때 배운 회계학과 거시경제학이 큰 도움이 됐다.”





-그 뒤 바로 취직했나?





“각종 판매업을 했다. 한동안 컴퓨터 부품을 팔다가, 나중에 이글(EAGLE) 회로기판의 중국 동북(둥베이, 지린·랴오닝·헤이룽장)지역 총판을 맡기도 했다. 그때 돈을 꽤 많이 벌었다.”





뭐든지 팔 수 있는 ‘영업의 신’





리샤오라이는 대학 3학년 때부터 장사를 시작했다. “창춘대는 그리 좋은 학교가 아니다. 이렇다 할 역사·전통도 없다”고 한 것으로 보아 학업에 흥미를 못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 무엇을 팔았냐고 물으니 “다양한 걸 팔았다”고 했다. 다른 인터뷰에서는 한때 옷가지를 판 적이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컴퓨터기업과 PC방을 운영했다는 얘기도 했다. 사업 수완이 꽤 좋았는지 승승장구했다. 언젠가 한 강연에선 “무슨 물건이든 팔 수 있고, 아무리 비싼 것도 팔 수 있고, 다른 사람은 못 파는 것도 팔 수 있는 영업의 고수였다”고 말한 바 있다. 이글(EAGLE) 동북 총판 시절엔 처음으로 1백만위안(현재 환율로 약 1.65억원)이 넘는 현금을 손에 넣어봤다고 한다.



하지만 사기를 당하기도 했고, 사업 부진과 실패도 겪었다. 부침을 겪다 보니 자연히 안정적 수입을 바라게 됐다. 결국 연변에서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조선족 친구의 권유로 영어 강사 일을 하게 됐다. 중국 매체들은 당시 리샤오라이의 강의에 대해, “강의 스타일이 재미있어서 학생과 누리꾼들로부터 사랑받았다”고 평가한다. 리샤오라이를 영어 강사 세계로 이끈 조선족 소꿉친구 뤄융하오(W永浩·라영호)는 그와 같은 신동방교육그룹에서 영어를 가르치다가, 훗날 블로그 사이트 ‘뉴보왕’(牛博Q, Bullog.cn)을, 더 나중엔 스마트폰 제조사 스마티잔(Smartisan)을 창업했다.



-본격적인 명성을 얻게된 것은 중국의 대표적인 어학원·유학원인 ‘신동방’의 영어 강사 시절 때부터였다.


“돈을 많이 벌 수 있었던 직업이었다. 2000년 말부터 시작해서 2007년까지 7년을 가르쳤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내가 영어를 잘 해서 가르쳤던 게 아니다. 내가 평소 영어를 쓸 환경이 어디 많겠나. 그냥 보통 수준이다. 다만, 신동방에서 GRE, 토플 등 시험 관련 수업을 가르쳤다. 영어를 가르쳤다기보다는, 시험을 잘 치는 방법을 가르친 것이다. 영어를 잘 하는 것과 시험을 잘 치는 건 매우 다른 일이다.”

-성공적이었나?





“떠날 무렵엔 이미 학생들 사이에 꽤 유명한 상태였다. 현장 수업도 하고, 인터넷 강의도 했는데, 들으러 오는 학생들이 무척 많았다. 40일짜리 과정을 연간 10번 진행했는데, 한 번에 8개반을 가르쳤다. 1개반 학생이 기본 500명이었고, 1500명짜리 반도 가르친 적이 있다. 끝에선 보이지도 않으니 칠판이 무용지물이라 그냥 말로 하는 수업이었다. 학생이 너무 많아 극장을 빌려서 했다. 연간 내 수업을 듣는 학생 수가 2~3만명에 이르렀다. 당시 영어 단어 교재도 한권 썼다. 2003년에 펴낸 내 인생 첫 책인 ‘토플 핵심어휘 21일 돌파’(TOEFL核心뗇lG21天突破)는 어휘책(단어장) 가운데 전국에서 판매량이 가장 많았다. 지금도 판매되고 있다.”





-당시 수입은 얼마나 됐나?





“1년 수입이 세후 60만위안(현재 환율 약 1억원) 정도였다. 그 정도면 최고 세율 45%을 적용받기 때문에 세전 수입은 1백만위안(현재 환율 약 1.65억원) 이상이었다. 당시 신동방 강사들 가운데 세전 수입이 50~60만위안 넘는 경우는 적지 않았다. 나는 다만 세후 15만위안 가량 되는 책 인세 수입이 있어서 다른 이들보다 좀 더 많았다.”





영어강사 억대연봉을 아버지 치료에 쏟아붓다





그렇다고 리샤오라이가 이 많은 돈을 흥청망청했을까? 아니었다. 고향에서 장사를 할 때도, 영어강사로 이름을 날릴 적에도, 그의 수입은 대부분 병원에 입원해있는 부친의 치료에 쓰였다. 당시 리샤오라이 부부의 1년 생활비는 15만위안(현재 환율 약 2500만원) 정도였고, 나머지 번 돈은 모두 아버지에게 보냈다. 2005년 말 아버지가 사망하자, 어머니는 “넌 이제 자유다”라고 했다. 2007년 여름 그는 신동방 강사 일을 그만뒀다.



리샤오라이는 유명 영어강사 경험을 살려 2008년 에듀이즈(Eduise, 艾德睿智)라는 유학원을 창업했다. 과거 직원 모집공고를 보면, 고교생을 상대로 토플 및 SAT 대비와 미국 유명학교 진학을 컨설팅해주는 업무를 하려 한 것으로 나온다. 하지만 실제로는 제대로 운영이 되지 않았다. 이 유학원은 지금도 홈페이지가 있긴 하지만 아무런 게시물이 없다. 오히려 융자 사업을 필두로, 투자자로 변신하게 된 것이 이 무렵이다. 이 무렵 리샤오라이는 ‘시간을 친구 삼아’라는 책을 한 권 냈다. 그리고 그의 명성을 다시 바꾼 사건이 발생한다. 블록체인을 만나게 된 것이다.

-암호화폐는 어떻게 접하게 됐나?





“2011년 2월초 트위터에서 우연히 비트코인 1개 가격이 1달러를 넘어섰다는 글을 봤다. ‘가상화폐’라는 게 뭐길래 1달러보다 비싸게 됐을까 궁금했다. 트위터에 ‘긱(geek)’들이 많지 않나. 그들에게 알아보니 비트코인 백서를 권하더라. 읽어봤는데 너무 훌륭했다. 우수한 논문의 특징을 모두 갖추고 있었다. 그때부터 관심을 갖고 있다가, 계정 만들고 5월이 돼서야 4달러를 주고 사들였다. 얼마나 사야 하나 망설이는 사이 더 올라버렸다. 그걸 보고 착실히 매수를 했고, 2100개까지 사들였을 때 평균 매수가가 6달러였다. 그리고 6월에 (5배인) 32달러까지 올랐다. 그러나 그건 죄다 날려버렸다.”





-어떻게 된 일인가?





“32달러를 찍더니 하락하기 시작했다. (평균 매수가 4배인) 24달러 때 4분의3을 팔아버렸다. ‘원금’은 그대로 두고, 이익을 본 만큼은 채굴에 투자하기로 한 것이다. 이어지는 폭락장에서 나는 내가 판단을 참 잘 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채굴은 실패했다. 잘 몰라서 다른 이들에게 맡겼는데 믿을 만한 이들이 아니었다. 남겨둔 4분의1을 맡겨뒀던 거래소는 당시 해킹당한 마운트곡스였다. 지금도 인터넷에서 당시 거액의 비트코인 손실을 본 이용자 명단을 볼 수 있는데, 거기 내 이메일도 있다. 나중에 리플 10만달러어치를 도둑맞은 적이 있는데, 그때 마운트곡스와 같은 이메일, 같은 비밀번호를 썼다. 리플 시작 때 10만달러를 투자했는데 지금 그대로 갖고 있었으면 수십억달러가 됐을 것이다. 문제는 당시 리플은 계정을 만들면 비밀번호를 바꿀 수가 없었다. 마운트곡스 해킹 뒤 계정을 새로 하나 만들어 옮기려고 하던 때 해킹당했다.”





-결국 여윳돈이 있어서 암호화폐를 투자 대상으로 봤던 건가?





“정반대다. 암호화폐라는 좋은 투자 대상이 있어서 투자에 나섰지만, 돈이 많지 않았다. 돈이 더 있었으면 더 투자를 했을 것이다.”





비트코인 2100개를 개당 6달러에 샀다가 모두 날려버리다





리샤오라이는 이 시절의 실패 경험을 ‘대바구니로 물을 길었던’, 곧 밑빠진 독에 물을 붓는 헛수고였다고 묘사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트코인 투자는 결국엔 이익이 될 거란 기대를 버리지 않았다. 당시 가지고 있던 애플 주식을 팔아서 마련한 16만달러로 다시 비트코인을 사들였다. 애플 주식은 신동방의 뉴욕증시 상장 때 받은 주식이 3배 가량 올랐을 때 팔아 사들인 것이었다.



리샤오라이는 그때부터 2012년 중반까지 사들인 비트코인은 10만8000개가 좀 넘었고, 매수가격은 개당 약 1달러였다고 설명한다. 현금이 고갈된 상태에서 그는 거래를 중단했다. 컴퓨터 안의 호스트 파일을 바꿔 비트코인 관련 사이트 주소는 0.0.0.0으로 수정했다. 비트코인 관련 메일도 자동분류시킨 뒤 쳐다보지도 않았다. 비트코인 가격이 2013년 1월 10달러, 2013년 2월말 당시까지 최고가였던 32달러 선을 회복했다는 것을 알았을 때도 쥐고 있기로 했다. 일각에선 매도 움직임이 있었지만, 며칠 지나자 100달러를 돌파했다.
200달러가 넘어선 뒤 같은 해 5월 관영 뉴스 인터뷰에서 리샤오라이는 자신이 갖고있는 비트코인 수량이 여섯자릿수(10만대)라고 밝혔다. 뉴스는 그를 ‘경험이 풍부한 비트코인 애호가’, ‘중국 비트코인 업계에서 달인으로 알려진 인물’로 소개했다. <코인데스크>도 같은해 12월 베이징 중관춘에서 진행된 그의 강연을 보도하며, 리샤오라이를 “중국의 최대 비트코인 부호”라고 묘사한 뒤, “비트코인 10만개는 현존하는 비트코인의 100분의1 규모로,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비트코인 부호는 12만개를 보유한 윙클보스 형제가 있다”고 소개했다. (하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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